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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약 5백년전 진주강씨 渭亮(위량) 公은 세종 4년 서기 1459년 기묘 9월 19일 한양에서 출생 학문과 덕업을 쌓아서 어모장군 관직을 거쳐 정삼품 당상관 통정대부에 오르셨으나 연산군 10년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관직을 버리고 한양을 떠나 피신 은거의 모진 역경을 겪으면서 안주처을 찾아 제주도로 입도하셨다. 그후 명당을 찾아 한라산 정기 멎은 제주시 영평동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설촌이 계기가 되었다.

    설촌유래

    지금으로부터 약 5백년전 진주강씨 渭亮(위량) 公은 세종 4년 서기 1459년 기묘 9월 19일 한양에서 출생 학문과 덕업을 쌓아서 어모장군 관직을 거쳐 정삼품 당상관 통정대부에 올으셨으나 연산군 10년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관직을 버리고 한양을 떠나 피신 은거의 모진 역경을 겪으면서 안주처을 찾아 제주도로 입도하셨다.

    그후 명당을 찾아 한라산 정기 멎은 제주시 영평동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설촌이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척박한 땅을 개척하면서 학문과 덕업을 후세에 훈도하시며, 슬하에 7남을 두었는데 큰 아들 수의부위 어모장군 세평(世平)은 영평에 남아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며, 6형제는 관직을 따라 한양으로 떠났다.

    수의부위 어모장군 세평은 4남을 두었는데 큰아들 언웅(彦雄)은 삼양(감수동)으로 이주하고 2남 권지훈련원 선무랑 군자감주부 彦俊(언준)은 영평에 거주하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학문과 덕업을 후세에 훈도하시다가 2번째 사위 라주김씨 을묘왜변 명종 10년 서기 1555년 갑사로 참가하여 왜군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위남(衛南)에게 집터을 물려주고 명당을 찾아서 현재 애월읍 봉성리로 이사하였다. 현재 애월읍 봉성리에는 진주강씨 집성촌이다. 라주김씨 갑사 위남은 학문과 덕업을 후세에 훈도하시며 덕망과 후학자로서 집안이 번창하여 현재 라주김씨 도종손 16대손까지 옛집터에서 집성촌을 형성하여 살고 있고, 현재 영평동에는 진주강씨와 라주김씨가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이후 자연 부락이 형성되면서 여러 성씨가 정착하게 되었다.

    설촌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속칭 '가시나물'로 불리어지고 있다.
    옛 선조들은 이곳에서 자라는 가시나무를 베어다 농기구 등 생활에 필요한 용구를 만들어 사용하거나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이렇게 가시나무로 만든 용구가 널리 알려지므로 해서 은연중 이곳을 가시나물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물과 관련해서는 지금의 영평초등학교에서 동남쪽으로 약 700m 떨어진곳에 속칭 '올리소'라는 봉천수가 있으며, 약 100여년전 전 만 하여도 이 올리소 주위에 가시나무가 울창했고,매년 겨울이 되면 철새(천둥오리)가 날아와 가시나무 숲에 둥지를 틀어서 살았다고 해서 그 봉천수를 '올리(오리)소(沼:못)'라 했다 한다.따라서 '가시나물'이 가시나무(가시낭:가시남)를 의미하는 것인지, 가시나무와 물(올리소)를 합친 용어인지는 분명치가 않다.

    어떻든 동세미와 그 주변의 울창한 숲, 주위에 넓게 펼쳐진 들판 등은 설촌의 입지조건으로 충분하며, 때문에 동새미 주변에는 일찍부터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삶의 터전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설촌과정에 있어서는 앞서 보아 온 전설적인 면도 간과 할 수 없겠지만, 그 외에도 3소장(三所場)을 중심으로 마소를 치던 목동(테우리)이나 화전민(火田民)들이 조선조 말에 이르러 목장이 폐장(廢場)되면서 자연히 이곳에 정착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리하여 이후 화순오씨(和順吳氏)ㆍ광산김씨(光山金氏)ㆍ경주이씨(慶州李氏)등도 정착하기 시작하여 중산간에서 가장 큰 자연부락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설촌 이후 이곳에는 많은 장인들과 가난한 선비들이 모여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영평상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옛 지명중에는 강비자 집터 ㆍ오수원 집터ㆍ윤남마을ㆍ외왓ㆍ불미터ㆍ감남밭이라 불리어지는 곳들이 있다. 그 중 와앗(瓦田)은 조선조 고종(高宗)19년(1882), 관덕정(觀德亭)을 증수할 때에 이곳에서 기와를 구웠다 하여 생긴 지명이며, 불미터는 대장간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